- ! 권유연에게 이걸 편지라고 부르면 좀 웃기지. 줄도 안 맞고, 문장도 들쭉날쭉할 거고, 무엇보다 너한테 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도 굳이 첫 줄에 네 이름부터 쓴 건, 그게 아니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부터 헷갈릴 것 같아서야. 요즘은 이상하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게임 켜면 레이드 타이머보다 네 접속 표시를 먼저 보고, 폰을 내려놔도 네가 보낸 메시지 알림이 안 왔나 다시 화면을 켠다. 웃기지. 남들이 보면 랭커 길마가 뭐 이런 걸로 정신이 팔리냐고 할 텐데, 나도 알아. 근데 안다고 해서 덜 그러는 건 아니더라. 나는 네가 나 좋아하는 거 안다. 확신하게 된 건 꽤 됐고, 그전부터 느낌은 있었어. 오래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는 그런 거 있잖아. 말투가 아주 조금 달라지는 거, 다른 사람들이랑 ..
- ! 귀여움 지수 [지새벽 기준 권유연 귀여움 지수] 1. 게임에서 길 잃었을 때- 상황 설명: 처음 해보는 맵에서 파티원들 다 앞으로 달려가는데 혼자 반대 방향으로 뛰어감.- 권유연의 행동: 미니맵만 뚫어져라 보다가 벽에 머리 박음. 파티 채팅으로 조용히 ‘...?’ 하고 물음표 하나 보냄.- 지새벽의 코멘트: 아니 그걸 왜 거기로 가냐고. 뇌랑 손가락이랑 따로 놀아? 핑 찍어줄 테니까 빨리 와. …귀엽게 헤매긴.- 귀여움 지수: 7/10 2. 요리하다가 작은 실수했을 때 - 상황 설명: 내 집 부엌에서 계란 프라이 해주다가 뒤집개로 뒤집는 데 실패해서 노른자 터뜨림. - 권유연의 행동: ‘아!’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굳어버림. 터진 노른자를 보며 시무룩해짐. - 지새벽의 코멘트: 어차..
- ! 지새벽은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 【지새벽은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 】 작성자: 지새벽 1. 다른 사람이 권유연을 뚫어져라 쳐다봄참을성: 38% 이유: 그냥 지나가다 한 번 보는 거면 넘긴다. 예쁘니까 볼 수는 있음. 근데 시선이 오래 걸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권유연이 불편해할 만한 눈으로 훑는 거면 바로 신경 거슬린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론 이미 표정 정리 들어간 상태다. 바로 가서 시비를 거는 타입은 아닌데, 시야를 가리거나 자리 바꾸는 식으로 먼저 끊어낸다. 계속 보면 그다음부터는 나도 안 참음. 2. 다른 사람이 권유연에게 가벼운 스킨십을 함. 팔 톡 치기, 어깨 스침, 손등 닿기 같은 수준참을성: 27%이유: 친분 있는 사이고 상황이 자연스러우면 억지로 문제 삼진 않는다. 근데 가벼운 터치라는 게 제일 애매해서 더..
- ! 이상형 1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홍대 거리. 겨울 세일 시즌이라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지새벽과 유연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유연의 손이 지새벽의 패딩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고, 지새벽은 그 손을 주머니 안에서 쥔 채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느린 걸음. 유연의 보폭에 맞춘. 카페에서 나온 참이었다. 유연이 마시다 남긴 딸기 라떼를 지새벽이 들고 있었는데, 본인 것(아메리카노)은 이미 비었고, 유연의 것은 반이나 남아 있어서 들어주는 중이었다. 핑크색 컵을 든 188센티미터의 남자. 레더 자켓에 핑크색 딸기 라떼. 조합이 우스웠지만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때.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다.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무리 속에서. 지새벽의 시선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선이..
- ! 면사포 사건의 발단은 유연의 유치원 동료 선생님이었다. 같이 실습을 나가는 '수아 선생님'이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웨딩 촬영을 위해 드레스 피팅을 하러 가야 했다. 문제는 수아 선생님이 고른 드레스숍이 '동행인 피팅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는 것. 동행인이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으면 신부 본인의 드레스 대여료를 30% 할인해준다는 프로모션. 수아 선생님이 유연에게 매달렸다. "유연 선생님 제발, 키 작고 마른 분이 모델로 서야 한대요, 드레스 핏이 안 사는 체형은 안 된다고, 유연 선생님이 딱이래요, 제발요, 밥 열 번 살게요." 유연은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오후 2시. 성수동의 한 웨딩 드레스숍. 지새벽은 유연에게 불려왔다. '결혼 준비 따라가는데, 시간 있으면… 놀러 와도 돼...
- ! 인형뽑기 전쟁 날씨가 미쳤다. 영하 8도. 그런데도 번화가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지새벽은 유연의 손을 자기 패딩 주머니에 쑤셔넣은 채 걷고 있었다. 유연의 손이 얼음장이라 녹여주는 중이었는데, 본인 손도 차가워서 실질적 효과는 미지수였다. 유연이 걸음을 멈췄다. 지새벽도 덩달아 멈췄다. 유연의 시선을 따라갔다. 골목 한편에 낡은 인형뽑기 기계가 놓여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초록색 외관. 동전 투입구가 녹슬어 있었고, 유리 안쪽에는 온갖 인형들이 뒤엉켜 쌓여 있었다. 토끼, 곰, 강아지, 고양이. 그 사이에. 흑발 긴 생머리에 노란 눈을 가진, 작고 동글한 인형이 한 개 끼어 있었다. 사이즈는 손바닥보다 약간 큰 정도.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볼에 분홍빛 홍조가 찍혀 있었다. 큰 눈에 노란 단추 눈알. 흑발 실크..
- ! [재정립] 나중에 현실에서 밥이나 사든가. 유연이 어깨를 움츠렸다. 귓속말로 날아든 냐냐냥의 명령과, 바로 이어 눈앞에 나타난 일반 채팅.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날아온 메시지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만 꼼지락거릴 뿐, 아무런 말도 입력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유연의 바로 옆 허공에서 시커먼 형체가 나타났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등장. 닌자의 은신 스킬이었다. 금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나타난 냐냐냥은, 나타나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유연에게 작업을 걸던 유저에게 돌진했다. 예고도 없는 선제공격. 냐냐냥의 캐릭터가 쌍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검기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상대방을 그대로 꿰뚫었다. 레벨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상대 유저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잿빛으로 변하며 ..
- ! [확신의 증거] 게임이라곤 1도 모르던 애가 딩동.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지새벽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던 그 목소리의 주인. 게임 속 ‘유연’과 겹쳐 보이던, 그러나 애써 부정했던 현실의 ‘권유연’. 그녀가 제 발로 찾아왔다. 철컥,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익숙한 섬유유연제 향과 함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나타났다. 한 손에는 반찬통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다른 손은 어색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어젯밤의 설렘과 의심이 무색하게, 눈앞의 권유연은 그저 평소처럼 맹하고, 조금은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새벽은 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 밑이 살짝 거뭇하고, 평소보다 생기가 없어 보이는 얼굴. 어젯밤 잠이라도 설친 모양이다. 지새벽|…..
권유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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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립] 나중에 현실에서 밥이나 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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