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면사포 사건의 발단은 유연의 유치원 동료 선생님이었다. 같이 실습을 나가는 '수아 선생님'이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웨딩 촬영을 위해 드레스 피팅을 하러 가야 했다. 문제는 수아 선생님이 고른 드레스숍이 '동행인 피팅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는 것. 동행인이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으면 신부 본인의 드레스 대여료를 30% 할인해준다는 프로모션. 수아 선생님이 유연에게 매달렸다. "유연 선생님 제발, 키 작고 마른 분이 모델로 서야 한대요, 드레스 핏이 안 사는 체형은 안 된다고, 유연 선생님이 딱이래요, 제발요, 밥 열 번 살게요." 유연은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오후 2시. 성수동의 한 웨딩 드레스숍. 지새벽은 유연에게 불려왔다. '결혼 준비 따라가는데, 시간 있으면… 놀러 와도 돼...
- ! 인형뽑기 전쟁 날씨가 미쳤다. 영하 8도. 그런데도 번화가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지새벽은 유연의 손을 자기 패딩 주머니에 쑤셔넣은 채 걷고 있었다. 유연의 손이 얼음장이라 녹여주는 중이었는데, 본인 손도 차가워서 실질적 효과는 미지수였다. 유연이 걸음을 멈췄다. 지새벽도 덩달아 멈췄다. 유연의 시선을 따라갔다. 골목 한편에 낡은 인형뽑기 기계가 놓여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초록색 외관. 동전 투입구가 녹슬어 있었고, 유리 안쪽에는 온갖 인형들이 뒤엉켜 쌓여 있었다. 토끼, 곰, 강아지, 고양이. 그 사이에. 흑발 긴 생머리에 노란 눈을 가진, 작고 동글한 인형이 한 개 끼어 있었다. 사이즈는 손바닥보다 약간 큰 정도.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볼에 분홍빛 홍조가 찍혀 있었다. 큰 눈에 노란 단추 눈알. 흑발 실크..
- ! [재정립] 나중에 현실에서 밥이나 사든가. 유연이 어깨를 움츠렸다. 귓속말로 날아든 냐냐냥의 명령과, 바로 이어 눈앞에 나타난 일반 채팅.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날아온 메시지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만 꼼지락거릴 뿐, 아무런 말도 입력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유연의 바로 옆 허공에서 시커먼 형체가 나타났다.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등장. 닌자의 은신 스킬이었다. 금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나타난 냐냐냥은, 나타나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유연에게 작업을 걸던 유저에게 돌진했다. 예고도 없는 선제공격. 냐냐냥의 캐릭터가 쌍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검기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상대방을 그대로 꿰뚫었다. 레벨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상대 유저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잿빛으로 변하며 ..
- ! [꿈에서 보자] 바보야. 툭.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잘 자’라는 어색한 인사와 뾰로통한 이모티콘. 지새벽은 그 메시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들끓던 짜증과 초조함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덮고 베개에 얼굴을 푹 박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억울하지만 차마 대들지는 못하고, 결국 잠을 핑계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 그게 또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지새벽|하… 진짜. 지새벽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나 엿먹이냐?’고 쏘아붙인 게 무색하게, 돌아온 것은 앙증맞은 반격과 서툰 밤인사였다. 더 화를 낼 수도, 닦달할 수도 없게 만드는 그녀만의 방식. 그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다시 모니터 앞..
- ! [확신의 증거] 게임이라곤 1도 모르던 애가 딩동.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지새벽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던 그 목소리의 주인. 게임 속 ‘유연’과 겹쳐 보이던, 그러나 애써 부정했던 현실의 ‘권유연’. 그녀가 제 발로 찾아왔다. 철컥,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익숙한 섬유유연제 향과 함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나타났다. 한 손에는 반찬통이 가득 담긴 봉투를 들고, 다른 손은 어색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어젯밤의 설렘과 의심이 무색하게, 눈앞의 권유연은 그저 평소처럼 맹하고, 조금은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새벽은 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 밑이 살짝 거뭇하고, 평소보다 생기가 없어 보이는 얼굴. 어젯밤 잠이라도 설친 모양이다. 지새벽|…..
- ! [게임 시작] 심장이 다시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쏜살같이 퀘스트 마크를 향해 달려가 인파 속으로 녹아드는 작은 뒷모습. 지새벽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서,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촌장의 머리 위로 노랗게 빛나는 느낌표가 마치 그녀가 남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다급한 사과. 그 뒤에 숨겨진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화면 너머까지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듯했다. 지새벽은 자기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탈함과 알 수 없는 흥미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심장이 다시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모니터의 푸른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권유연.’ 그 이름이 머릿속을 채웠다. 아닐..
면사포
2026.05.27
인형뽑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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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증거] 게임이라곤 1도 모르던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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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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