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포
사건의 발단은 유연의 유치원 동료 선생님이었다.
같이 실습을 나가는 '수아 선생님'이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웨딩 촬영을 위해 드레스 피팅을 하러 가야 했다. 문제는 수아 선생님이 고른 드레스숍이 '동행인 피팅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는 것. 동행인이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으면 신부 본인의 드레스 대여료를 30% 할인해준다는 프로모션. 수아 선생님이 유연에게 매달렸다.
"유연 선생님 제발, 키 작고 마른 분이 모델로 서야 한대요, 드레스 핏이 안 사는 체형은 안 된다고, 유연 선생님이 딱이래요, 제발요, 밥 열 번 살게요."
유연은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오후 2시. 성수동의 한 웨딩 드레스숍.
지새벽은 유연에게 불려왔다. '결혼 준비 따라가는데, 시간 있으면… 놀러 와도 돼.'라는 문자 한 통에. 드레스숍에 남자가 왜 가냐고 했더니 '대기실에 소파 있대, 거기서 폰 하고 있으면 될 거야.' 라고. 그래서 왔다.
1층 대기 공간. 하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샹들리에 조명이 눈부셨다. 주변은 온통 하얀색과 아이보리, 레이스와 비즈. 지새벽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자켓을 입은 남자가 웨딩드레스 숍 소파에 앉아 있는 그림. 수아라는 여자가 2층에서 피팅 중이었고, 유연은 '잠깐 사진 찍고 올게'라며 스태프에게 끌려갔다. 30분 전이었다.
30분.
지새벽은 핸드폰 화면을 껐다 켰다 반복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디스코드에 습박이 뭐라고 떠들고 있었지만 읽을 기분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웨딩드레스숍이라는 공간이 주는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11월에 유연이 물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오빠 나랑 진짜 결혼할 거야…?'
'하려고.'
그때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 앉아 있으니 그 단어의 무게가 달랐다. 결혼. 웨딩드레스. 면사포. 부케. 그런 것들이 물리적 형태를 가지고 눈앞에 널려 있었다. 그때. 2층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스태프가 먼저 내려왔다. "동행분, 피팅 끝났어요~" 하는 밝은 목소리. 지새벽이 고개를 들었다. 계단 위에서 유연이 내려오고 있었다. 지새벽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졌다. 소파 쿠션 위로 핸드폰이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지새벽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유연이었다. 분명히 유연이었다. 30분 전에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올라갔던, 유연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오프숄더 A라인. 쇄골 아래로 레이스가 흘렀고, 허리가 조여진 곳에서부터 치맛자락이 부드럽게 퍼졌다. 유연의 작은 체구에 맞춰진 드레스가 아니었을 텐데, 이상하게 어울렸다. 아니, 이상하게가 아니라. 완벽하게. 머리가 올려져 있었다. 평소에 내려놓던 흑발 생머리가 느슨하게 올려져 목덜미를 드러내고, 몇 가닥이 귀 옆으로 흘러내려 볼을 스치고 있었다. 웨딩 메이크업이 되어 있었다. 과하지 않은. 입술에 옅은 핑크, 눈꼬리에 펄, 속눈썹이 평소보다 길어 보였다. 그리고 면사포. 머리 위에서부터 어깨까지 내려오는 얇은 튤. 반투명한 흰색 천 너머로 유연의 얼굴이 비쳤다. 노란 눈이 부끄러운 듯 아래를 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동작이 조심스럽고 서툴러서.
진짜 신부 같았다.
금방이라도 결혼식장에 입장할 것 같았다.
지새벽의 심장이 멈췄다. 비유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한 박자를 건너뛴 것 같았다. 흉골 뒤에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감각. 숨이 걸렸다. 목구멍에 공기가 막힌 것처럼. 입이 벌어졌다. 닫히지 않았다. 유연이 계단 끝에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지새벽과 눈이 마주쳤다. 유연의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부끄러운 것이 분명했다. 입술이 달싹거리며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이상하지…?' 같은 말을. 하지만 지새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파에서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서 있었다. 다리가 움직인다. 유연 쪽으로. 계단 앞까지. 두 걸음. 세 걸음. 유연의 앞에 섰다. 올려다보는 시선. 면사포 너머로 보이는 노란 눈. 지새벽의 손이 올라갔다. 떨리고 있었다. 본인도 몰랐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면사포의 끝을 잡았다. 유연의 얼굴 위에 드리워진 얇은 튤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손가락이 떨린다. 본인도 알았다. 멈출 수 없었다. 면사포가 올라가자 유연의 얼굴이 드러났다. 가리개 없이. 필터 없이. 웨딩 메이크업이 얹어진 얼굴. 노란 눈이 올려다보고 있다.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입술이 달싹거렸다. 지새벽은 숨을 내쉬었다. 길고. 떨리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구멍에 단어들이 쌓인다. '예쁘다'도 아니고, '어울린다'도 아니고, '미치겠다'도 아닌. 그 모든 것을 합쳐놓고도 부족한 무언가가 성대를 막고 있었다.
지새벽의 벽안에 수분이 차올랐다. 눈물은 아니었다. 아니라고 우겼다. 그냥 조명이 밝아서. 샹들리에 빛이 눈에 들어와서 그런 거였다. 유연의 면사포를 올린 손이 그대로 유연의 볼에 닿았다. 손바닥으로 작은 얼굴을 감싸고 엄지손가락이 광대뼈 위를 스쳤다. 메이크업이 번질 수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지새벽│......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한 번 더 열렸다.
지새벽│......씨발.
그게 첫 마디였다. 유연이 눈을 깜빡인다. 지새벽의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코끝도.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는데, 턱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지새벽│......경고 좀 하고 내려와.
목소리가 갈라졌다. 낮고 허술하게. 평소의 능글맞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날것의 감정이 걸러지지 않은 채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스태프가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밝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지새벽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유연의 얼굴을 감싼 두 손. 면사포가 뒤로 넘어가 유연의 올린 머리 위에 걸쳐져 있었다. 흑발 위의 하얀 튤. 목덜미의 잔머리. 쇄골 위로 흐르는 레이스. 11월에 '하려고'라고 말했었다. 결혼. 프러포즈. 당연한 것처럼 말했는데. 지금 눈앞에 그 '당연한 것'이 형태를 갖추고 서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권유연이라는 미래가. 면사포를 쓴 자기 여자가. 지새벽은 유연의 이마에 이마를 갖다 대고 눈을 감았다. 코끝이 맞닿았다.
지새벽│......나 지금 진짜 이상해.
속삭임. 유연에게만 닿는 크기의 목소리.
지새벽│심장이 개 아파. 왜 이러지.
'아프다'고 표현한 것은 정확했다. 이건 두근거림이 아니다. 쥐어짜는 것에 가까웠다. 가슴 한가운데를 주먹으로 움켜쥔 것 같은. 터질 것 같은. 좋아서 아픈 거라는 걸, 지새벽은 알면서도 인정하기 어려웠다. 눈을 떴다. 유연의 노란 눈이 바로 앞에 있었다. 속눈썹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지새벽│......빨리 벗어.
모순된 말이었다. 면사포를 올린 것도 본인이었고, 이마를 대고 있는 것도 본인이었고, 놓지 않는 것도 본인이었다.
지새벽│이거 입고 있으면 진짜 지금 여기서 해버릴 것 같으니까.
결혼을.
입 밖에 내지 않은 마지막 세 글자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후일담
드레스를 벗고 나온 유연에게 지새벽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았다. 드레스숍을 나오며 성수동 거리를 걸었다. 10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유연이 올려다봐도 정면만 보며 걸었다. 귀만 빨간 채. 카페에 들어가서야 입을 열었다.
지새벽│......유연아.
지새벽│아까 그 드레스숍 이름 뭐였어.
유연이 대답하기 전에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고 있었다. 지새벽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지새벽│그냥. 나중에 쓸 데 있어서.
나중에.
지새벽의 핸드폰 메모장에 드레스숍 이름이 저장됐다. 그 아래에 날짜 하나가 추가됐다. '12.28 - 면사포 권유연' 유연은 그 메모를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