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1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홍대 거리.
겨울 세일 시즌이라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지새벽과 유연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유연의 손이 지새벽의 패딩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고, 지새벽은 그 손을 주머니 안에서 쥔 채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느린 걸음. 유연의 보폭에 맞춘. 카페에서 나온 참이었다. 유연이 마시다 남긴 딸기 라떼를 지새벽이 들고 있었는데, 본인 것(아메리카노)은 이미 비었고, 유연의 것은 반이나 남아 있어서 들어주는 중이었다. 핑크색 컵을 든 188센티미터의 남자. 레더 자켓에 핑크색 딸기 라떼. 조합이 우스웠지만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때.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다.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무리 속에서. 지새벽의 시선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선이 끌려갔다. 의지와 무관하게.
여자였다. 키가 작았다. 유연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작을 정도. 155센티미터쯤. 흑발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윤기 있는 생머리가 겨울 바람에 흘렀다. 그런데 그냥 흑발이 아니었다. 마치 먹물을 부은 것처럼 깊고 순수한 검정.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목덜미가 스쳤다. 얼굴은 작았다. 둥글고 부드러운 윤곽. 눈이 크고 순했다. 웃고 있지 않은데도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는 인상. 옆에 있는 친구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뭔가 말하고 있었는데, 그 동작이 작고 조심스러워서 마치 작은 동물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같았다. 코트 안에 니트를 입고 있었고, 목도리를 입까지 올려 감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용했다. 화려하지 않은데 눈이 갔다. 차분한 색감의 옷, 수수한 가방, 과하지 않은 화장.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람이 불었다. 여자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 동작 하나에 흑발이 어깨 위로 쓸려갔고, 하얀 귀와 작은 턱선이 드러났다.
포니테일이 잘 어울릴 얼굴이었다.
지새벽의 걸음이 0.3초 느려졌다. 시선이 그 여자를 따라갔다. 2초. 아니 3초. 횡단보도를 건너온 여자가 지새벽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은은한 비누 향 같은 것이 바람결에 실렸다. 여자는 지새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친구와 대화하며 그대로 지나갔다. 3초. 지새벽의 뇌리에서 여러 가지 정보가 동시에 처리됐다. 흑발 긴 생머리. 작은 키. 순하고 귀여운 인상. 포니테일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작고. 그의 이상형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었다면, 모든 항목에 체크 표시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4초째.
지새벽은 고개를 돌렸다. 정면으로. 딸기 라떼를 한 모금 빨았다. 유연의 것을. 핑크색 빨대를 문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지새벽의 손은. 주머니 안에서 유연의 손을 쥔 그 손은.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왜 고개를 돌렸는지, 지새벽 본인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알고 있었다. 3초 동안 시선이 간 것. 그건 본능이었다. 10대 때부터 그려온 이상형의 외형이 눈앞을 지나갔으니 반사적으로 눈이 간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4초째에 고개를 돌린 것. 그건 의지였다. 주머니 안의 유연의 손. 작고 따뜻한 손가락. 유연의 체온. 지새벽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가느다란 손가락들. 그 감촉이 지새벽을 4초째에 정면으로 돌려놓았다. 천년의 이상형이 옆을 지나갔다. 완벽한 외형. 완벽한 분위기. 체크리스트의 모든 항목. 하지만 지새벽이 쥐고 있는 손은 하나였고, 그 손의 주인은 옆에 있었다. 지새벽은 딸기 라떼를 한 모금 더 빨며 유연 쪽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지새벽│"추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평소와 같은 톤. 다만 주머니 안에서 유연의 손을 쥔 힘이 살짝 더 세졌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지새벽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새벽의 심장은 3초 동안 뛴 적이 없었다. 눈이 갔을 뿐이지, 심장이 반응한 적은 없었다. 이상형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조립한 완벽한 그림이다. 현실에서 그 그림과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가는 건 당연하다. 예쁜 그림을 보면 시선이 멈추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건 그림이 아니었다.
유연이 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 처음에 살짝 머뭇거리는 그 0.5초. 유연이 웃을 때 눈이 초승달이 되는 것. 유연이 자기 이름을 부를 때 '새벽 오빠'의 억양이 끝에서 살짝 올라가는 것. 유연이 잠결에 자기 팔을 더듬어 찾는 손가락의 온도. 그런 것들이 심장을 뛰게 했다.
이상형은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사랑은 눈이 아니라 손끝에서 시작된다.
지새벽은 주머니 안에서 유연의 새끼손가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유연이 올려다볼 것이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치면 입꼬리가 올라갈 것이다. 그 웃음 하나가, 방금 지나간 천년의 이상형 따위를 3초 만에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지새벽은 알고 있었다. 자기 이상형의 정답이 처음부터 옆에 있었다는 것을. 다만 그걸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뿐이었다.
지새벽│"딸기 라떼 다 마셨는데. 다른 거 사줄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그러나 주머니 안의 손은 여전히 유연의 손가락을 놓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