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지새벽 시점
그 여름, 지새벽은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자기 아이스크림을 뜯으며 멀뚱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은하가 옆에서 초코바를 깔끔하게 먹는 동안, 시선은 자꾸 한 방향으로 흘렀다. 메론바를 받아 든 채 굳어 있는 작은 뒷통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빨갛게 물든 귀가 보였다. 녹아서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초록색 액체를 신경도 못 쓰고 서 있는 꼴이 한심한데, 웃기게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대신 뭔가 쿡 하고 찌르는 게 가슴 한복판을 건드렸다가 지나갔다. 뭐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 유연의 교복 소매를 향해 줄줄 흘러가고 있었다. 지새벽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성큼 다가가 그 작은 손등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녹잖아. 빨리 먹어."
유연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는 순간, 노란 눈동자와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여름 햇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얼굴, 거기에 메론 향이 섞인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지새벽은 그 찰나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후배 챙겨주는 게 이 정도로 신경 쓰이는 일이었나. 분명 처음에는 울먹이며 서 있길래 귀찮지만 한 번쯤 도와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쉬는 시간에 4층 복도를 지나가면서 무의식적으로 그 반 교실 쪽을 흘겨보게 되었고, 하굣길에 세 명이 아닌 두 명만 있으면 왠지 어색했다. 매점에서 메론맛 우유를 집어 드는 작은 손을 본 건 우연이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는 자신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새벽은 그 감각을 이름 붙이지 않았다. 열여섯 살의 머릿속에는 축구와 게임과 내일 훈련 시간표가 차 있었고, 학년 아래 꼬맹이가 차지하는 칸은 '챙겨줘야 하는 애' 정도였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유연이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선배'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할 때, 그 검은 정수리를 내려다보면서 손이 올라갈 뻔한 적이 있었다. 머리를 쓸어줄 뻔한 손을 지새벽은 호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곧바로 잊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종업식 날 편의점을 나서며 도은하가 물었다. '괜찮은 애지.' 지새벽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순하니까. 건들면 울 것 같긴 하지만."
도은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더 묻지 않았다. 지새벽은 헤어지는 골목에서 유연을 향해 손을 한 번 들어 보이며 방학 잘 보내라는 말을 던졌다. 그게 전부였다. 전부였어야 했다. 그때의 지새벽은 알지 못했다.